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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ME : 이희호 여사 : 주요저서  
   
 

 
<이희호의 내일을 위한 기도>
  여성신문사, 1998


이 책은 김대중 대통령이 내란음모죄로 사형선고를 받고 감옥에 계시던 1980년 11월 21일, 무기형으로 형을 감소 받아 청주교도소에 수감되시던 1981년 2월 2일, 그리고 그 해 12월 31일까지 약 1년 1개월 동안 여사께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보낸 편지를 엮은 책이다.

1973년 남편이 납치 당해 살해될 뻔 한 적도 있었고, 1976년 민주구국선언 사건에 연루 되어 투옥된 적도 있었지만 이 편지를 쓰던 당시는 그 어느 때 보다 어려운 시기였다.

1980년 9월 11일에 사형이 구형되고, 17일에 다시 사형이 선고됐는가 하면 최초의 편지를 쓰던 11월 21일은 대법원의 최종판결을 눈앞에 두고 있어서, 주위 사람들과 함께 형이 확정되자 마자 사형을 집행하지나 않을까, 그래서 일종의 선심쓰기로 편지를 허용하는 것이나 아닐까 가슴을 졸이던 때였다.

이렇게 남편의 목숨을 두고 숨막히게 애태우던 시기에, 특히 무기형으로 감형은 됐으나 격리된 독방에 홀로 계시던 남편에게 매일매일 기도하는 심정으로 용기를 북돋우고, 고통을 함께 한다는 마음으로 가족소식, 측근들의 근황, 대학입시를 앞에 두고 있는 막내아들의 심리상태, 남편이 아끼던 애견과 마당의 화초 이야기에 이르기 까지 마주 앉아 이야기 하듯 써내려 가고 있다.

손바닥 만한 엽서에 여백없이 빽빽하게 써내려간 글 속에는 사적인 이야기들만이 아니라 국내외 정세로부터 사회문제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주제가 담겨 있고, 남편이 현실감각을 잃지 않도록 수 많은 책을 소개 하고 차입하는가 하면, 검열을 의식하면서 은유와 성서 구절로 대신한 글 속의 글 까지 여사의 폭넓은 식견과 사회의식을 엿볼 수 있다.

엄청난 고난 속에서도 오히려 신의 각별한 은총을 느낀다고 고백하면서 감사하는 모습을 통해 우리는 고난을 대하는 참 어른의 모습을 만날 수도 있다. 이 책을 출판하던 1998년은 IMF로 실직자와 노숙자가 거리에 넘쳐나고 가정이 파괴되어 결식아동의 소식이 가슴을 아프게 하던 때였다. 옛날에는 가장이 무너져도 어머니가 남아서 가정을 지켰는데 이제는 그 어머니들이 집을 나가서 아이들이 밥을 굶는다는 걱정의 소리가 드높을 때였다.

실직한 남편에게 힘을 주어야 하는 아내, 어려운 살림을 꾸려 가야 하는 주부, 그러면서 어떻게든 아이들을 키워가야 하는 어머니들이 용기를 갖고 오늘의 고난을 어떻게 이겨나가야 할지 한 장 한 장의 엽서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책이다.

1999년 일본 센다이에 있는 창동사(創童舍)에서 일어판이 나왔고, 같은 해 영어판 'Praying for Tomorrow'가 USC Korea Project에서 나왔다.
그리고 6월 중국어판 "黎明前的祈禱" 가 발간되었다.


 
<나의 사랑 나의 조국> 이희호, 명림당, 1992.

이 책은 크게 세가지 관점에서 줄기를 찾아 읽을 수 있다.
먼저, 우리가 경제개발을 향해 숨가쁘게 넘어온 20세기 말의 한국사회의 그늘에서 억울하게 고통 당한 사람이 얼마나 많았으며, 그 속에서 민주주의의 열매가 피도록 우리는 어디서 무엇을 했을까 하는 반성의 궤적을 따라 갈 수 있다.
계엄령과 유신, 김대중납치사건, 가택연금과 구속, 긴급조치, 인혁당사건, 3.1민주구국선언문사건, 구속, 80년의 5.17, 그리고 사형선고 등의 정치적 사건 하나하나에서 야당 지도자의 아내로서, 그리고 그 가족의 어머니로서 겪게되는 가장 어려웠던 10년 간의 이야기를 자세히 찾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엄청난 정치적 사건에 대해 국내 언론사들이 완전 침묵하고 있었던 10여년 간에 대한 귀한 기록이라는 점을 높이 사야 한다.

다음은 극한 상황에 처한 인간에게 종교란 어떤 의미가 있으며, 종교가 얼마나 인간을 위대하게 만들 수 있는가 하는 점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남편의 죽음을 앞에 하고서도 '하늘의 뜻에 순응'하는 태도는 어떤 상황에 처해서도 미움이나 원망을 만들지 않는다.

매일매일 당하는 불의를 미워하면서도 매번 자신을 반성하고 상대를 용서하는 태도는 특히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큰 가르침이 될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현명하고도 독립적인 성품의 여성이 일제와 해방, 6.25, 4.19와 5.16 그리고 유신시대, 광주시민운동 등의 20세기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어떻게 자신을 지켜가며 사회와 민족을 위해 봉사할 수 있었던가 하는 점을 따라가며 읽어 볼 수 있다.
여학교 교육 만도 대단하던 시기에 여사는 이화여전과, 서울대학교 사범대, 그리고 미국 감리교 남성클럽의 후원으로 유학까지 마쳐 50년대에 석사학위를 가진 여성이 된다.

사회활동 면에서 보자면, 전쟁중에도 임시수도인 부산에서 여자청년단의 일과 여성문제연구소를 만들어 여성지위향상을 위한 활동을 시작했고, 유학 후에는 이대에서 사회사업학을 가르치는 한편 YWCA의 총무가 되어 세계를 여행하는 기회도 가졌다.

결혼 후 그 모든 고통을 겪고도 1992년 결혼 30주년을 맞아 여사는 기쁨으로 단을 거둔다고 썼다.
잘못도 없이 고난을 겪고 있는 사람이 그 고난이 자신을 단련시킬 기회라 생각하고 원망없이 견뎌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고난을 견디면서도 망가지기는 커녕, 마침내 좋은 날이 왔을 때 과거 고난의 의미를 곰곰히 생각하면서 자신을 다잡는 모습은 아무에게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관점에서 읽어가다 보면 이 한 권의 책 속에 그리 간단치 않은 인생의 교훈이 담겨 있음을 저절로 알게 된다.

1994년 일본의 마이니찌신문사에서 일어판으로 번역되었고, 1997년에는 'My Love, My Country'라는 제목으로 USC Korea Project에서 영어로 번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