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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ME : 김대중 대통령 : 취임 전 주요 연설  
 
[ "미국의 대아시아 정책을 위한 몇가지 제언" ]
(My Suggestions for U.S. - Asian Policies)


▷ 내셔널 프레스 클럽 오찬 연설 - (National Press Club Luncheon Address)
▷ 연 사 : 김 대 중/ 한국 정치인 - (South Korean Elder Statesman)
▷ 사 회 : 길버트 클라인 (Mr. Gilbert Klin) - 내셔널 프레스 클럽 회장

김대중 대통령은 1994년 5월 12일, 미국 내셔널 프레스 클럽 초청의 오찬 연설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는 미국의 내외신 기자를 포함하여 250여명이 참석하는 성황을 이루었다. 김대통령은 25분간 연설을 한 다음 35분간에 걸쳐서 모든 문제에 대한 질문에 영어로 답변하였다. 이날 연설의 장면은 미국 전역을 커버하고 있는 400개 이상되는 국영 라디오 (National Public Radio) 방송망을 통해 생방송되었고, 30개국 이상으로 연결되는 인터넷 방송망(Internet Network), 그리고 미 케이블방송 (C-SPAN)과 제휴되고 있는 4200개의 케이블 시청자에게 중계되었다.

이 책자는 영어로 진행된 내용을 녹취.번역한 것으로써 내셔널 프레스 클럽 회장의 소개인사 및 김대통령의 연설내용, 그리고 질의응답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회장인사 및 소개

길버트 클라인 회장 : 내셔널 프레스 클럽 (미국 워싱톤 DC)

안녕하십니까? 내셔널 프레스 클럽(National Press Club: NPC)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저는 길(버트) 클라인 입니다. 저는 NPC의 회장이면서 미디아 제네랄(Media General)그룹의 특파원으로 리치몬드 타임즈 디스펫 치(Richmond Times Dispatch)와 템퍼 튜리뷴(Tampa Tribune)지 및 윈스 톤 쌀렘 저널(Winston Salem Journal)지의 특파원 입니다. 오늘 이 장소에 오신 NPC 동료회원들을 환영합니다. 또한 C-SPAN 채널과 국가 공영 라디오(National Public Radio) 및 각국으로 연결되는 인터넷 방송망 (Internet Network)을 통하여 우리를 시청해 주시는 모든 분들께도 환영의 말씀을 드립니다.

주빈석에 계신 분들을 소개하기 전에 우리 NPC의 예정된 행사 몇가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5월 16일(월요일)에는 질병통제본부(Center for Disease Control)의 데이빗 셋처국장께서 '우리 청소년을 보호하는 과제: 인명을 위협하는 선택과 노출'이라는 제목으로 연설을 하십니다. 5월 18일 19일(수요일. 목요일)에는 우리 NPC가 [공개와 비밀]이라는 제목하에 '핵시대의 책임성 확립'이라는 심포지움을 개최합니다. 2일간의 심포지움 중 두분의 오찬연사를 모실 예정입니다. 수요일에는 앨 고어 부통령을 모 시고, 목요일의 오찬연사로는 존 홀럼 군비통제와 군축소장입니다. 5월 26 일 목요일에는 시카고의 대주교인 죠세프 버나딘 추기경을 모시겠으며 그 분의 연제는 '보건보험의 개혁-지속되는 인생윤리'입니다.

오늘 오신 연사께 물어보실 내용이 있으시면 - 틀림없이 질문이 있으시겠지만 - 각 테이블에 준비된 카드에 서면으로 해주시고 그 카드들을 제 앞으로 보내주시면 최대한의 질문을 연사께 여쭤보겠습니다.

주빈 테이블에 앉으신 귀빈들부터 소개를 하겠습니다. 거명되면 잠깐 기립해 주십시오. 여러분은 귀빈들의 성함이 완전히 거명되기 전까지는 박수 를 삼가시기 바람니다.

여러분의 우측부터 소개하면 한국일보의 이상석 워싱톤 특파원, 보스톤 글러브 (Boston Globe)지의 논설위원인 마이크 푸쩨, 뉴스위크 (Newsweek)지의 멜린다 류, 한국의 유인학 국회의원, 서울 방송 (SBS)의 백낙천 특파원, 오늘 연사의 부인이신 이희호 여사, 자유기고가이시고 우 리 NPC 연사위원회(Speakers Committees)의 위원장이신 크리스티 와이 즈 여사, NPC 연사위원회의 위원이시며 오늘 오찬을 준비해주신 잭 레이 놀즈 통신회사의 잭 레이놀즈씨, 연합통신의 장영섭 워싱톤 특파원, 그리고 마지막으로 디펜스 위크리(Defense Weeldy)지의 존 써더그린씨입니 다.

또한 NPC의 스탭진으로 오늘의 오찬을 가능케하신 멜리사 벤더, 쉐리 버튼, 멜라니 앱다우 더뫄, 그리고 제프 타벨씨를 소개합니다.

오늘 우리 NPC의 초청연사로 오신 분은 김대중 박사님으로 아시아 인권 운동의 선구자 중의 한분이십니다. 제가 김 박사님을 개인적으로 처음 접촉할 수 있었던 때는 1987년 제가 NPC의 연사위원회 회장으로 있었을 시 기입니다. 그 당시 김 박사님은 남한 최초의 민주주의 선거에 임하셔서 선거운동을 하시던 중이었으며, 우리 NPC가 김 박사님을 연사로 초청했으나 그 초청을 수락하지 않기로 결정을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그 당시 만약 미국에 오셨으면 다시 귀국이 허용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그 이후 상당한 발전을 해왔습니다. 그 대부분의 발전이 김박사님 의 집요한 노력의 결과입니다. 1973년 박정희 장군의 군사정권시기에 김 박사님은 한국 중앙정보부가 주도한 납치 살해기도에도 불구하고 생명을 유지하셨습니다. 그 이후 전두환 장군하의 또 하나의 군사독재자에 의하여 군사재판에서 사형언도를 받았으나 임기를 마치는 카터 대통령과 대통령 당선자인 레이건 대퉁령이 한국 정부에게 김 박사님의 처형이 미국과 한국과의 관계를 파탄으로 몰고갈 것이라는 경고를 한 이후 그의 생명을 구 출하게 된 것입니다.

초년기에는 기업과 언론에서 활약하였으며 그 이후 정계에 들어가셔서 야당의 지도자로 신민당의 지명을 받아 박 장군과 대결하여 1971년 선거에 출마하였습니다. 철면피한 부정선거에도 불구하고 김 박사님은 전투표 자의 46%의 지지를 받으셨고 그로 인하여 박장군은 한국의 헌법을 폐기 했던 것입니다.

그이후 장기간 김 박사님은 수차의 투옥을 당하셨고 15년 이상의 연금조치의 피해를 보셨습니다. 사형을 모면하신 김 박사님은 미국으로 오셔서 한국인권문제연구소를 창설하셨습니다. 그리고 1985년 다시 한국으로 귀국 하셔서 비폭력적 민주화 투쟁에 헌신하셨으며 그러한 노력으로 군사정권으로 하여금 민주개혁을 하도록 압력을 넣으신 것입니다. 그런 이후 김 박 사님은 두번 더 대통령선거에 출마하셨습니다. 1987년에는 치열한 3파전을 통하여 노태우 장군에게 패배하였고, 1992년에는 민주화 운동의 동료였던 김영삼씨에게 패배하였습니다.

오늘 한국역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시기에 김 박사님이 우리 NPC의 귀빈으로 오셨습니다. 세계를 통하여 냉전이 종식되었으나 한반도에는 여전히 군사적 대결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국제문제를 다루는 논설가이신 짐 호그랜드씨가 워싱톤 포스트(Washington Post) 지를 통하여 북한이 자신의 핵생산시설에 대한 국제적인 사찰을 거부하고 오히려 한국을 새로운 전쟁의 도가니로 몰고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경고를 하였습니다.

북한이 5~6개의 새로운 핵폭탄을 제조할 만한 양의 플루토늄을 교묘히 저장하기 시작했는지의 여부는 차후 수주내에는 명백하게 나타날 것 갈습 니다. 만약 그러한 것이 사실로 판명되면 미국은 틀림없이 국제적 제재를 가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에대하여 북한은 모든 제재를 전쟁선포로 간주할 것이라고 말해왔습니다. 윌리엄 페리 국방장관은 '만약 그러한 사태가 온다면 우리는 전쟁의 위협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라고 언급한 것으로 전언되고 있습니다.

냉전이 끝난 오늘날 한반도에서 새로운 전쟁가능성을 이야기한다는 그 자체가 허황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김 박사님, 오늘 우리가 김 박사님께 원하는 것은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태를 우리에게 잘 설명하여 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NPC에 오신 김대중 박사님을 위하여 뜨거운 박수를 보내주십시오.(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