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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9와 民族統一 ]

▷ 1980년 4월 18일, 4·19 기념강연회 연설, 동국대학교
나라걱정할 機會까지 박탈

오늘 이 마이크가 이렇게 자주 고장이 나는 것은, 지난번 한국 신학 대학에서도 그랬는데, 제가 생각해보니까 마이크들이 유신치하에서 기(氣)가 죽고(박수)움츠렸던 것이 아직 제대로 안풀려서 그런것 같습니다.("옳소!",박수)

제가 오늘 이 전통에 빛나는 동국대학교 (박수),부처님의 사바세계·중생제도의 위대한 정신에 입각한 동국대학교,그리고 4.19혁명 당시 여러분의 선배인 노희두씨를 잃고 많은 사람이 부상당하며 4.19혁명의 선두에 섰던 이 동국대학교에 와서 여러분의 고마운 초청을 받고 강연을 할 수 있는 것을 저로서는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함성,박수)

강연전에 듣건데 밖에 수만명의 엄청난 청중들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분들과 같이 얼굴을 마주대고 연설하지 못하는 사실,유신 헌법을 철폐하고 민주헌법을 한다면서,정치발전을 한다면서 우리가 조용히 장래에 대해서 의견을 교환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이 현실에 대해서 우리는 분노와 안타까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옳소!",박수)

4·19정신은 抵抗精神

첫째로 ,4·19정신은 무엇보다도 저항의 정신입니다.억압과 불의(不義)에 대해서 참지 못한 이 민족정기(民族精氣)의 발로가 가장 감수성이 예민하고 순수한 우리젊은 학생들을 통해서 나타났던 것입니다.아까 고은(高銀)선생께서도 말한 것과 같이 동학혁명(東學革命), 독립협회운동, 3·1운동 등 우리 근대민족주의,민주주의,이러한 위대한 정신을 계승한 것이 4·19요, 그 정신을 계승한 것이 유신체제 7년동안에 우리국민들에게 계승되고,여러분들에게 계승되어서 감옥으로 가고,고문을 당하고,체포·투옥당하면서도 굽히지 않고 마침내 부산·마산사태를 일으키고,10·26사태를 가져온 위대한 4·19정신인 것입니다.("옳소!",박수)

4·19는 不義에 항거한 義로운 行動

둘째로 ,4·19정신은 위대한 정신인 것입니다. 4·19를 의거(義擧)로 보느냐 혁명(革命)으로 보느냐 하는 견해의 차이는 있지만 그 정신이 의로운 것, 고귀한 것인 것만은 틀림이 없습니다. 우리 젊은이들이 불의(不義)를 보고 일어선 의로운 행동이었고 불의(不義)를 보고 꽃다운 청춘을 ,그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아낌없이 바친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위대한 행동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더욱 고귀한 것은 4·19가 끝나자 그대로 정치를 정치인에 맡기고 학원으로 돌아가는,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그러한 행동은 이 나라 민족역사를 통해서 가장 위대하고,가장 아름답고,숭고하다는 것을 나는 주장할 수 있습니다.(박수)

秩序와 寬容의 精神

셋째로 ,4·19는 질서와 관용의 정신을 발휘했습니다.4월26일 李박사가 하야(下野)하자,우리도 목격했습니다만,어제까지 어깨동무를 하고 데모를 하던 학생들이 오늘은 비를 들고 거리를 쓸고, 플래카드를 들고 시민들에게 질서를 지키자 호소하고, 이렇게 철저히 질서를 지켰을 뿐만 아니라, 어제까지 타도의 대상이었던 李박사가 그래도 그분이 마지막은 깨끗이 정리해서 "젊은이가 불의를 보고 일어서지 않으면 그나라는 망한다.이와 같은 부정선거가 있었으면 내가 물러나야지"하면서 노혁명가(老革命家)다운 기백을 보이면서 물러나자 우리 국민과 학생들은 그 늙은 할아버지를 박수로 보내주었습니다. 또 누구의 집도 찾아가서 방화(放火)하거나 보복을 하지 않았습니다.이런 일은 최근의 이란 사태와 비교하면 우리가 얼마나 두드러진 차원(次元)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심리학자가 말하기를 "한국민족은 참을성이 많지만 일단 일어서기만 하면 무서운 민족이다.그러나 한국민족은 아주 인내심이 강하고 평화적인 민족이다."라고 말했는데 저는 4·19에서 정권을 몰아낸 그 자체도 잘한 일이지만 몰아낸 이후에 아무 혼란없이 수습하고 그리고 과오를 범한 자들을 법에 맡기고 사적(私的)인 보복을 안한 우리민족의 자제(自制)와 평화와 관용의 전통을 유감없이 발휘한 위대한 거사(擧事)였다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박수)

反民主的·反民族的·反統一的 行爲에 대한 快擧

넷째로,4·19혁명은 부정선거 규탄을 위해서 일어섰으나 이것은 3·15부정선거가 하나의 계기가 되었을 뿐입니다.4·19혁명은 자유당 정권의 반민주적(反民主的)·반민족적(反民族的)작태에 대해서 국민적 분노를 학생들이 대변해서 일어난 것인데 그 분노는 자유당 정권의 민권유린의 독재와 ,국민대중을 무시한 주권행사와,국민의 여망에 역행한 반통일적(反統一的) 자세에 대해서 우리국민의 분노와 주장을 대변해서 자유와 정의와 통일정신에서 일어났다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박수)

4·19가 善·正義 이면, 5·16은 惡·不義

5·16은 무엇이냐?(웃음)
5·16은 4·19에 대해서 정반대의 안티테제(Antithese)입니다.(박수.함성)
4·19가 정의(正義)이면,5·16은 불의(不義)이고,4·19가 민주(民主)이면,5·16은 반민주(反民主)인 것입니다.("옳소!",함성)

4·19혁명이후 일어난 5·16군사 쿠테타는 그 시작부터 명분없는 일입니다.이 사람들이 군사쿠테타 이후「한국군사혁명사」(韓國軍事革命史)라는 책을 만들었습니다.이 책은 방대한 책인데,이 제1권 196페이지에는 "민주당 정권이 수립되어서 13일만에 충무로에 있는 충무장에서 정권을 뒤집을 모의를 했는데 누구누구가 이 자리에 참석했다"고 자랑스럽게 이름까지 나와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민주당 정권이 부패했느니, 무능하다니,사회가 혼란스럽다고 하지만 그것은 나중에 붙인 구실이고 정부가 수립되자마자 아직 총리가 국무위원(國務委員) 이름도 다 외우기 전에, 정권수립 13일만에 정권을 전복할 음모를 꾸몄으니 무슨 대의명분(大義名分)이 있는 쿠테타가 아니라 정권욕(政權慾)에 사로잡힌, 민주주의를 증오한 작태에 불과하다는 것이라고 나는 여러분에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옳소!",함성·박수)

4·19精神인 自由를 유린

5·16은 첫째로 4·19정신인 자유(自由)를 유린했습니다. 朴정권 치하에서, 특히 유신정권 7년동안 여러분의 자유는 여지없이 무시되었습니다. 언론의 자유, 신체의 자유, 학원의 자유, 종교의 자유, 사상의 자유, 통신의자유 등 모든 자유가 여지없이 짓밟혔습니다.심지어 다방에서 친구하고 차 한잔 마시면서,별 대단치않는 얘기를 하면서 고개를 이리돌리고 저리돌려야 하는 (웃음·박수·함성)그런 비참한 생활을 우리는 살아왔습니다. 자유를 위한 항거(抗擧)에는 가차없이 체포하고,투옥하고,고문하고,연금하고,학원과 직장으로부터 추방하는 등의 보복과 탄압을 강행했습니다.박정권하에서 치른 선거치고 부정선거 아닌 선거가 있었습니까?("옳소!",함성·박수) 아마 崔仁圭라는 사람이 부정선거를 했다고 해서 박정권에 의해서 처형당했지만,그 사람은 지금도 박정권의 부정선거의 결과를 보고 지하에서 "내가 왜 죽어야 했는가"고 통곡할 겁니다.(박수)

1963년 尹潽善선생이, 나는 그 분이 부정선거가 아니면 당선된 것으로 보는데 그 당시의 엄청난 부정선거가 없었다면 박정권이 과연 이겼겠느냐 하는 생각을 많은 사람이 갖고 있습니다.("옳소!",함성·박수)

이 사람들은 반민주적(反民主的)인·반국민적(反國民的)인 독재와 기만을 서슴치 않았습니다. 1967년 朴正熙씨는 목포에 가서 "3선개헌 절대로 안합니다"그러더니 2년후에는 절대로 했습니다.(박수) 1971년 대통령선거 때 이 장충단 공원에서 국민앞에 말하기를 이번 출마가 마지막 출마라고 하더니 1년 지나서 이것을 뒤집었는데 박정희씨의 그 공약이 거짓이란 것은 아마 이 동국대학교가 가장 확실한 증인일 것입니다.("옳소!",박수)